상대방 준비서면을 받아 들면 대부분 같은 반응을 보인다. 사실과 다른 대목마다 밑줄을 긋고, 억울한 마음에 처음부터 끝까지 반박문을 쓴다. 그렇게 완성된 서면은 길고 뜨겁지만, 정작 판사가 알고 싶은 것, 곧 어느 사실을 인정하고 어느 사실을 다투는지, 다투는 근거가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준비서면은 감정을 전하는 편지가 아니라 법원이 판결문을 쓸 때 옆에 펴 놓는 정리표에 가깝다. 혼자 소송하는 사람이 변호사와 가장 크게 차이 나는 지점도 법리 지식보다 이 정리 방식이다. 형식만 제대로 갖춰도 같은 내용이 훨씬 설득력 있게 읽힌다.
이 글에서는 준비서면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 상대 주장을 반박하는 순서, 증거 번호를 붙이는 법, 그리고 언제까지 내야 하는지를 차례로 짚는다.
1. 준비서면에 반드시 적을 것
가. 법이 정한 기재사항
민사소송법 제274조(준비서면의 기재사항)준비서면에는 당사자와 대리인, 사건의 표시, 공격 또는 방어의 방법, 상대방의 청구와 공격 또는 방어의 방법에 대한 진술, 덧붙인 서류의 표시, 작성한 날짜, 법원의 표시를 적고 기명날인 또는 서명한다.
맨 위에는 사건번호와 사건명(예: 2026가소○○○○○ 대여금), 원고와 피고 이름을 적고, 맨 아래에는 작성 날짜, 이름과 도장 또는 서명, 그리고 "○○지방법원 귀중"을 쓴다. 사건번호를 빠뜨리거나 틀리게 적으면 서면이 엉뚱한 사건 기록에 붙거나 법원이 확인 연락을 해 오는 일이 생긴다. 로페이퍼 서식 모음의 준비서면 서식은 이 순서대로 칸이 나뉘어 있으니, 머리말과 끝맺음은 서식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
나. 주장과 증거는 함께 적는다
같은 조 제2항은 사실을 주장할 때 그것을 증명할 증거방법과 상대방 증거에 대한 의견을 함께 적으라고 한다. "피고는 2026. 3. 5. 원고에게 500만 원을 돌려주었습니다(을 제2호증 계좌이체 내역)"처럼 주장 문장 끝에 괄호로 증거를 붙이는 습관이 가장 간단하다. 근거 없는 주장 열 줄보다 증거가 붙은 주장 한 줄이 더 무겁게 읽힌다.
2. 상대 주장은 인정, 부인, 모름으로 나눈다
가. 침묵은 인정으로 취급될 수 있다
민사소송법 제150조(자백간주)당사자가 변론에서 상대방이 주장하는 사실을 명백히 다투지 아니한 때에는 그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본다. 상대방이 주장한 사실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때에는 그 사실을 다툰 것으로 추정한다.
혼자 소송하는 사람이 자주 놓치는 대목이 여기다. 억울한 부분만 골라 반박하고 나머지를 그냥 넘기면, 넘긴 사실은 인정한 것으로 볼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반박은 상대방 서면의 주장을 하나씩 나열하고 각각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 안전하다.
나. 세 갈래로 답하는 작성 예시
상대방 주장마다 "인정합니다", "부인합니다", "알지 못합니다" 가운데 하나로 답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원고 준비서면 2항 중 피고가 2026. 1. 10. 원고로부터 1,000만 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나, 그 돈이 대여금이라는 주장은 부인합니다. 위 돈은 공동 사업 출자금으로 받은 것입니다(을 제1호증 동업약정서)." 부인할 때는 왜 아닌지, 실제로는 어땠는지를 바로 이어서 적는다. 이유 없는 부인은 판사에게 별 의미가 없다. 내가 직접 겪지 않아 정말 모르는 사실만 "알지 못합니다"로 답한다.
다. 반박 다음에 내 주장을 쌓는다
상대방 주장에 대한 답을 마친 뒤에는 "피고의 주장" 같은 목차를 따로 세워 내 쪽 사실관계와 항변(이미 갚았다, 시효가 지났다, 서로 갚을 돈이 있어 상계한다 등)을 정리한다. 상대 서면의 순서를 따라가는 반박 부분과 내 논리를 세우는 주장 부분을 섞지 않으면, 읽는 사람이 쟁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 증거 번호는 갑과 을로 이어 붙인다
가. 원고는 갑, 피고는 을
민사소송규칙 제107조(서증 사본의 작성 등)서증 사본에는 원고가 제출하는 것은 "갑", 피고가 제출하는 것은 "을"이라는 부호와 서증의 제출순서에 따른 번호를 붙여야 한다.
원고는 소장에 붙인 증거가 갑 제1호증부터 시작했다면 준비서면에서 새로 내는 증거는 그다음 번호부터 이어서 붙인다. 소장에 갑 제3호증까지 냈다면 준비서면의 첫 새 증거는 갑 제4호증이다. 같은 계약서의 여러 장이나 같은 사람과 주고받은 문자 여러 건은 갑 제4호증의 1, 갑 제4호증의 2처럼 가지 번호로 묶으면 정리가 쉽다. 서증 사본은 내용 전부를 복사해야 하고, 일부만 오려 내면 안 된다.
나. 증거가 많으면 증거설명서를 붙인다
재판장은 서증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수가 많거나 무엇을 증명하려는지 불분명하면 증거설명서를 내라고 명할 수 있다(민사소송규칙 제106조). 명령을 받기 전이라도 증거가 다섯 건을 넘으면 서면 끝에 "증거 번호, 문서 이름, 작성일, 작성자, 증명하려는 사실"을 표로 정리해 붙이는 편이 좋다. 외국어 문서라면 번역문도 함께 내야 한다.
4. 언제까지, 얼마나 길게 내는가
가. 기일 7일 전에 상대방에게 닿도록
준비서면은 상대방이 읽고 준비할 시간을 두고 내야 한다(민사소송법 제273조). 특히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가 담긴 준비서면은 변론기일 또는 변론준비기일 7일 전까지 상대방에게 송달될 수 있도록 내야 한다(민사소송규칙 제69조의3). 전자소송이면 제출 즉시 상대방도 볼 수 있지만, 종이로 낸다면 송달에 걸리는 날짜까지 생각해 열흘 정도 여유를 두는 것이 안전하다. 기일 전날 낸 서면은 그 기일에 다뤄지지 못하고 다음 기일로 밀리는 일이 흔하다.
나. 뒤늦은 주장과 빠진 주장의 위험
일부러 또는 큰 잘못으로 주장이나 증거를 뒤늦게 내서 소송을 늦추면 법원은 그 주장을 각하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149조). 또 준비서면에 적지 않은 사실은 상대방이 출석하지 않은 기일에 변론에서 주장하지 못한다(같은 법 제276조). 할 말은 미리 서면에 담아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 30쪽을 넘기지 않는다
민사소송규칙 제69조의4(준비서면의 분량 등)준비서면의 분량은 30쪽을 넘어서는 아니 되고, 소장, 답변서 또는 앞서 제출한 준비서면과 중복되거나 유사한 내용을 불필요하게 반복하여 적어서는 아니 된다.
재판장은 30쪽을 넘긴 서면을 줄여 다시 내라고 명할 수 있다. 실제로 혼자 쓰는 준비서면은 5쪽에서 10쪽이면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전 서면에 쓴 내용은 "피고 2026. 9. 1.자 답변서 3항 기재와 같습니다"처럼 한 줄로 가리키고 넘어가면 된다.
5. 맺으며
좋은 준비서면은 길지 않고, 화가 나 있지 않으며, 상대 주장 하나하나에 분명한 답이 달려 있다. 사건 표시와 끝맺음은 서식대로, 반박은 인정·부인·모름으로, 주장 끝에는 증거 번호를, 제출은 기일 7일 전까지. 이 네 가지만 지켜도 판사가 끝까지 읽어 주는 서면이 된다. 서면을 다 쓴 뒤에는 상대방 서면을 옆에 놓고 답하지 않은 주장이 남아 있지 않은지 한 번 더 대조해 보자.
(로페이퍼 · 신동우 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29.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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