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아래 청구금액 및 독촉절차비용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구합니다." 지급명령신청서의 청구취지는 이 한 줄로 시작한다. 소장이라면 "판결을 구합니다"라고 쓸 자리에 "명령을 구합니다"가 들어간다. 이 차이가 곧 제도의 차이다. 법원이 재판을 열어 판결하는 대신, 서류만 보고 "갚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상대가 2주 안에 토를 달지 않으면 그 명령이 확정판결과 같은 힘을 갖는다.
빌려준 돈, 물품대금, 밀린 임금처럼 금액이 분명한데 상대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때, 많은 사람이 소장부터 떠올린다. 그런데 소송은 인지를 붙이고, 기일에 나가고,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지급명령은 그 과정 대부분을 건너뛴다. 대신 쓸 수 있는 사건이 정해져 있고, 신청서의 칸을 잘못 채우면 법원이 각하하거나 보정을 명한다. 이번 글에서는 로페이퍼 서식 모음의 지급명령신청서를 펼쳐 놓고, 칸마다 무엇을 쓰는지와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을 순서대로 짚는다.
1. 지급명령은 어떤 사건에 맞는가
가. 금액이 정해진 돈, 크게 다투지 않을 상대
지급명령은 독촉절차라고도 부른다. 민사소송법은 쓸 수 있는 청구의 종류를 처음부터 한정해 둔다.
민사소송법 제462조금전, 그 밖에 대체물이나 유가증권의 일정한 수량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청구에 대하여 법원은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지급명령을 할 수 있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공시송달 외의 방법으로 송달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돈 얼마를 달라"는 청구여야 한다. 집을 비워 달라거나 등기를 넘겨 달라는 청구에는 쓸 수 없다. 법에는 없지만 실무에서 더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상대가 이의신청을 하면 사건은 그대로 소송으로 넘어간다. 그러니 처음부터 "그런 돈 빌린 적 없다"고 다툴 것이 뻔한 상대라면 지급명령을 거쳐 가는 만큼 시간만 늦어진다. 반대로 빚을 인정하면서 갚지 않는 상대, 연락은 되지만 차일피일 미루는 상대에게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나. 상대 주소를 모르면 쓸 수 없다
제462조 단서가 혼자 신청하는 사람을 가장 많이 돌려보내는 조항이다. 지급명령은 채무자에게 실제로 송달돼야 하고, 공시송달로만 보낼 수 있는 사건에는 쓸 수 없다. 채무자가 이사해서 주소지에서 반송되면 법원은 채권자에게 주소를 보정하라고 명한다. 이때 채권자는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새 주소를 내거나, 제466조 제1항에 따라 소제기신청을 해서 사건을 소송으로 바꿀 수 있다. 외국으로 보내야 하거나 끝내 공시송달밖에 길이 없으면 법원이 직권으로 사건을 소송절차에 부친다(제466조 제2항). 신청 전에 상대의 현재 주소가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2. 신청서 칸마다 무엇을 쓰나
가. 당사자와 관할법원
맨 위 당사자 칸에는 원고·피고가 아니라 채권자·채무자라고 쓴다. 채권자 칸에는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적고, 채무자 칸에는 송달이 될 주소를 적는다. 채무자가 회사라면 회사 이름과 대표자 이름을 쓰고 법인등기사항증명서를 첨부한다. 제출처는 채무자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지방법원이나 시·군법원이다. 제463조는 독촉절차를 채무자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법원 등의 전속관할로 정한다. 채권자 집 근처 법원에 내면 관할이 없어 각하될 수 있고, 제465조 제2항은 각하결정에 불복할 수 없다고 정하므로 다시 내야 한다.
나. 청구취지, 원금·지연손해금·독촉절차비용
청구취지는 세 줄로 나뉜다. 첫째 줄은 원금이다. "금 10,000,000원"처럼 숫자로 쓴다. 둘째 줄은 지연손해금이다. "위 금액에 대하여 2025. 9. 2.부터 이 사건 지급명령정본이 송달된 날까지는 연 5%의,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이라고 쓴다. 기산일은 변제기 다음 날이고, 송달 다음 날부터 이율이 올라가는 근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이다. 이 조항은 소장 또는 이에 준하는 서면이 송달된 날의 다음 날부터 대통령령이 정한 이율을 적용하도록 하는데, 지급명령정본이 이에 준하는 서면이다. 셋째 줄은 독촉절차비용이다. 송달료와 인지대를 더한 금액을 내역과 함께 적는다. 이 칸을 비워 두면 비용을 상대에게 받을 근거가 없어지니 빼먹지 말아야 한다.
다. 청구원인과 첨부서류
청구원인은 소장보다 짧아도 된다. 지급명령은 증거를 첨부하지 않아도 되고, 법원은 채무자를 심문하지 않은 채 서류만 보고 명령을 낸다. 다만 "언제, 얼마를, 어떤 약정으로 주었고, 변제기가 언제였는데 갚지 않았다"는 뼈대는 갖춰야 한다. 제465조 제1항은 신청의 취지로 보아 청구에 정당한 이유가 없음이 명백하면 각하하도록 정하므로, 차용증이 없더라도 송금 날짜와 금액은 정확히 적는 것이 좋다. 첨부서류는 송달료 납부서 한 통이 기본이고, 전자소송으로 내면 납부서 대신 전자납부로 갈음된다.
3. 비용은 얼마인가
가. 인지는 소장의 10분의 1
지급명령의 가장 큰 장점이 여기 있다.
민사소송 등 인지법 제7조 제2항지급명령신청서에는 제2조에 따른 금액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인지를 붙여야 한다.
같은 법 제2조 제1항에 따르면 1,0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장의 인지액은 1,000만 원에 1만분의 45를 곱한 45,000원에 5,000원을 더한 50,000원이다. 지급명령은 그 10분의 1인 5,000원이면 된다. 전자소송으로 내면 거기서 다시 10분의 1을 깎아 준다. 로페이퍼 비용 계산기에 청구금액을 넣으면 소장과 지급명령의 인지액을 나란히 볼 수 있다.
나. 송달료는 당사자 1인당 6회분
송달료는 1회분이 5,640원이고, 지급명령은 당사자 1인당 6회분을 예납한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한 명씩이면 12회분, 67,680원이다. 소액사건 소장이 당사자 1인당 10회분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이 역시 절반 수준이다. 인지대와 송달료를 더한 금액이 청구취지 셋째 줄의 독촉절차비용이 된다.
4. 신청한 뒤 벌어지는 일
가. 2주 안에 이의가 없으면 확정
법원은 신청서를 심사해 흠이 없으면 지급명령을 내리고 채무자에게 송달한다. 명령서에는 송달된 날부터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안내가 함께 적힌다(제468조).
민사소송법 제474조지급명령에 대하여 이의신청이 없거나, 이의신청을 취하하거나, 각하결정이 확정된 때에는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2주가 지나면 확정되고, 채권자는 이 지급명령 정본으로 채무자의 예금이나 급여를 압류할 수 있다.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는 민법 제165조 제2항에 따라 10년으로 늘어난다. 채무자 입장에서 2주는 불변기간이다(제470조 제2항). 이 기간을 넘기면 "다퉈 보겠다"는 이의신청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 로페이퍼 서식 모음에는 채무자가 쓰는 지급명령 이의신청서도 함께 있다.
나. 이의가 들어오면 소송으로, 인지는 차액 보정
채무자가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면 지급명령은 그 범위에서 효력을 잃고(제470조 제1항), 지급명령을 신청한 때에 소가 제기된 것으로 본다(제472조 제2항). 처음부터 소장을 낸 것처럼 취급된다는 뜻이라, 시효 중단 시점도 신청일로 유지된다. 대신 법원은 채권자에게 소장에 붙였어야 할 인지액에서 이미 낸 인지액을 뺀 차액을 기간 안에 보정하라고 명한다(제473조 제1항). 1,000만 원 사건이라면 45,000원을 더 내는 셈이다. 기간 안에 내지 않으면 신청서가 각하되므로(같은 조 제2항), 보정명령 봉투가 오면 기한부터 확인해야 한다. 청구금액이 3,000만 원 이하면 소액사건으로 진행된다.
다. 확정돼도 끝이 아닐 수 있다
지급명령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고 해서 판결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대법원은 지급명령에 기판력이 없다고 본다.
대법원 2009. 7. 9. 선고 2006다73966 판결확정된 지급명령에 대한 청구이의의 소에서는 지급명령이 내려진 뒤에 생긴 사유뿐 아니라, 그 전에 있었던 청구권의 불성립이나 무효 같은 사유도 주장할 수 있으므로 지급명령에는 기판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채무자가 2주를 놓쳤더라도 "애초에 빌린 돈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청구이의의 소로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의미다. 채권자로서는 지급명령이 확정됐다고 증거를 버리지 말고, 차용증과 송금내역을 그대로 보관해 두어야 한다.
5. 맺으며
지급명령은 금액이 분명한 돈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집행권원까지 끌고 가는 절차다. 신청 전에 확인할 것은 세 가지다. 돈 청구인가, 상대 주소가 맞는가, 상대가 끝까지 다툴 사람인가. 이 셋이 맞으면 전자소송포털에서 서류제출, 민사서류, 지급명령(독촉)신청 순서로 들어가 로페이퍼 서식의 칸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된다. 법원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2주 뒤 확정된 명령서를 받는 경험은, 혼자 하는 소송의 첫걸음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
(로페이퍼 · 신동우 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23.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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